많이 거둘 순 없지만 진실을 거둡니다

‘오직 해와 땅과 물만으로, 더한 것은 농부의 정성뿐입니다. 많이 거둘 순 없지만 진실을 거둡니다.’ 라는 소개글처럼, 오직 자연의 힘과 정성만으로 진실을 거두는 자연농 농부 홍려석님을 만났다.

경기도 연천, 해땅물 농장

목소리는 우렁우렁 힘차고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인터뷰 의뢰를 위해 전화를 걸었던 때부터 이미 수화기 너머로부터 범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잘 나가던 유도선수에서 성공한 대기업 간부로, 한순간 실업자가 되었다가 지금의 자연농 농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여정을 거쳐온 홍려석 님의 삶에 귀기울이다보면 ‘자연과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그의 결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은 경기도 연천에 있는 아름다운 농장, ‘자연농 해땅물 농원’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알찬 열매를 빚어내고 있다.

뼛속까지 도시인

“출생지가 서울 중구 신당동이에요. 자연이라는 걸 별로 접해보지 않고 자랐어요. 정말 바쁘고, 되게 도시적이었어요. 태도도 사고방식도 다 그랬어요.” 농장에서 만난 그는 수염이 덥수룩한 자연인의 모습그대로였지만, 본디 그는 뼛속까지 도시인이었다. 자연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자랐기에 도시가 훨씬 더 익숙했다. 고교시절엔 올림픽까지 출전했을 정도로 촉망받던 유도선수였고, 운동을 그만둔 후에는 쭉 관심을 두었던 문화예술계에서 맹렬하게 일했다. “저는 경쟁사회에서 살았죠. 계속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더 드러내고 더 튀어야 하고 더 차별화되어야 했어요. 사실 저는 언제나 승자였어요. 패자의 설움 같은 건 몰랐죠. ‘자기 노력하기 나름 아니겠어?’ 하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게 ‘잘 나가던’ 삶이었지만 갑자기 해고라는 고비가 닥쳐왔다. 분노와 절망으로 힘겨워하던 때, 심심풀이로 집 앞 공터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 꽤 즐겁고 재밌게 느껴졌다. 농사에 관한 책을 찾아보던 중 ‘자연농’이라는 독특한 농법을 알게 됐다. “’이 농사는 풀과 벌레가 공생하는 농사’ 라는 말이 있었는데, 유난히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동안 내가 그런 공생의 개념을 잘 지키지 못해서 늘 경쟁 속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해고가 되고 힘든 시간을 겪었던 거겠죠. 그래서 그때, 농사에서라도 이런 공생하는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

2004년 가을, 아내에게 가족의 생계를 부탁하고 그는 홀로 연천에 왔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3달 동안 삽질만 했다’. 지인 소유의 땅이 있어 맨손으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든 여정이었다. 3년이 넘도록 아무 것도 자라지 않았다. “4년째가 제일 힘들었어요. 처음에 농사가 잘 안 될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1~2년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3년이 넘도록 전혀 안 자라나니까 굉장히 절망했죠. ‘이게 무슨 농사냐, 하나도 거두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않는 작물을 옆에서 풀만 잘라주는 게 무슨 농사냐’ 싶었어요. 그 불안과 기다림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내가 믿고 시작한 농사가, 농사가 아니잖아요. 안 자라는 데 이게 무슨 농사에요. 그러다 몸부림까지 칠 정도로, 아주 못 견디게 힘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땅이 나한테 ‘좀 더 기다리라’고 하더라구요. 그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으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느낀 때였다. ‘힘든 줄 안다, 조금 더 기다리라’는 땅의 소리를 듣고 난 이듬해부터, 밭에서 작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후 해가 갈수록 생산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아울러 그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자연과의 진정한 교감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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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저를 미친놈으로 손가락질하고 그랬거든요. 어려움들이 참 많았지만, 그걸 모두 날려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바로 자연과의 교감이에요. 비가 오고 난 다음에 햇빛이 맑게 쬐고, 바람이 세게 불고 하면 풀들이 일렁일렁하거든요. 그러면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아요. 찬란하다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그런 풍광이 펼쳐져요. 이전에는 사람과 자연이 별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농사를 시작한 후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그건 정말,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굉장한 즐거움이에요.”

우리는 진정 자연의 일부

그런 ‘굉장한 즐거움’ 속에서 진정한 공생을 꿈꾸는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초보 농사꾼이었던 그는 사실 두려워서, 안 해본 일들이 겁나서 마음을 달래려고 일부러 작물에게 말을 걸었다.
“풀 베기 전에 늘 ‘내가 아프지 않게 빨리 잘라줄게. 그래도 뽑지는 않아’라고 말을 걸면서 자르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렇게 말을 건네다보니, 처음엔 그냥 말이었는데 차차 마음이 담긴 말이 건네지게 되더라구요. 모종을 기를 때도 많이 관심을 가진 애들은 잘 자라고, 덜 중요하게 생각한 애들은 잘 안 자라요. 그런 모종들도 시간을 내서 하나씩 만져주면 잘 자라고요. 이따금 채소에 병이 나면, ‘내가 약을 줄 순 없단다. 스스로 이겨내길 바란다’ 라고 말을 건네죠.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채소가 병을 이겨내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채소들은 나한테 말을 걸고 있어요. 내가 못 알아들을 뿐이지.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거든요.”
전직 운동선수답게 당당한 체구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그야말로 ‘남자다운’ 풍채의 그가 밭에서 일하는 모습은 독특하다. 세심하게 작물들을 돌보고, 조심스레 풀을 베고, 이따금 곤충과 벌레들에게도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밭에 선 그는 처음 오두막에 앉아 인터뷰를 할 때보다 표정도 목소리도 한결 더 밝아져 있었다. “몸이 아파도, 여기 나오면 몸이 안 아파요. ‘땅의 기운’이라는 말이 있죠. 그게 정말이에요. 저는 풀들에게서, 작물에게서 위안을 받아요.”

다른 가치로 살기

수년째 자연농을 이어가고 있는 밭의 흙을 보여주고 있는 홍려석님이렇듯 자연과 가까워지기까지, 안정적인 삶에 이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경제적 문제 역시도 그랬다. 자연농이라는 별난 결정을 지지하며,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졌던 아내 최윤정 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남달리 눈썰미가 좋은 최윤정 님은 옷가게를 운영했고 사업은 잘 유지됐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아내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가게를 그만두자고 했어요.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최대한 절약하고, 하나하나 아끼고 있는데, 당신은 ‘이것도 사고 저것도 더 사라’면서 소비를 촉진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 한 집에 다른 가치관이 존재해선 안 된다. 그러니 시골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아내는 가게를 닫았죠. 2~3년 동안 준비해서 지금은 ‘건강체조’ 강사로 일해요. 시골엔 어디에나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니까, 찾아다니면서 건강체조랑 춤, 놀이를 가르치면서 보수도 받고 봉사도 하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함께 실천하며 위기를 헤쳐왔다. 또한 해가 거듭될수록 농작물들의 생산량도 조금씩 늘어서 판매수익도 생겼다. 큰 벌이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울러 농작물을 판매할 때도 ‘다른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지금은 일반 유기농산물과 비교해서 좀 더 높게 가격을 책정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제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려고 해요.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 작물은 좀 비싸게 받고, 노동력이 적게 들어간 건 싸게 받고, 외부의 가격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가격 체계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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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그는 단순한 소비자와 생산자 관계를 넘어, 삶을 공유하고 함께 일궈가는 일종의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일단 제 밭에 와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팔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그래야 제 농작물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알게 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채소를 구입해 먹는 40명 정도 회원들은 친구가 절반, 나머지는 여러 경로로 알게 된 분들인데, 다들 1년에 한두번 정도는 저희 밭에 옵니다. 저는 한 30명에서 50명으로 회원을 고정하려고 해요. 그래서 그분들께 농산물, 약초들을 1년 내내 공급하고, 언제든 와서 지낼 수 있는 펜션도 지어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서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저도 늙을 거니까, 늙을 때 심심하지 않게 같이 늙어갈 수 있게 말이죠.”

더 바랄 게 없는 삶

‘오직 해와 땅과 물만으로, 더한 것은 농부의 정성뿐입니다. 많이 거둘 순 없지만 진실을 거둡니다.’ – 해땅물 자연재배 농장의 온라인 카페 소개글이다. 2006년부터 쭉 운영해오고 있는 이 공간에는 한해 농사계획과 매월 농사일지가 꼼꼼하게 정리되어있다. 자연농에 관심 많은 이들이 찾아와 질문을 올리기도 하고, 틈틈이 농장소식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의 표현대로 개인적인 정리와 보관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연농에 관한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제 생각엔 자연농이 이 자본주의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예전엔 저도 그런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었죠. 하지만 거기에 휩쓸려가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니고, 그렇지 않은 다른 가치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그런 가치들을 찾고 싶어요. 제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나이를 들어갈수록 좀 더 진정한 가치 같은 것에 몰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전히 이루고픈 꿈이 많은 분주한 농부이지만, 그의 표정엔 이미 깊은 만족감이 드러나 있었다. “그때 땅한테, 조금 더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어요. 그러면서 참 많은 깨달음이 있었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즐거움도 많았어요. 그전에는 누가 저한테 미친놈이라고 하면 화가 났어요. 어떻게든 내가 성공해서 저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리라고 다짐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을 안 해요. 그 자체가 감사한 거니까. 여기 이 순간 자체에 만족하죠. 더 이상 행복할 게 어딨나, 이런 생각도 하죠. 주변 식구들, 친구들 다 도와주고, 가족들도 다 이해해주고, 그러니까 행복하죠.”

* 자연농 해땅물 농원 http://cafe.daum.net/samea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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