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농사, 가능합니다

다큐 ‘자연농’에는 한국, 미국, 일본의 자연농 농부들이 두루 등장한다. 그중 딱 두 번, 짤막한 분량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 있다. 도쿠시마의 자연농 농부 오키츠 카즈아키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그는 23년간 한결같이 이어온 자연농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Natural farmer Mr. Oktsu and wife at their farm in Awa, Japan (photo: Patrick M. Lydon)
오키츠씨 부부, 일본 도쿠시마 아와에 있는 논밭에서 (사진: Patrick M. Lydon)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자연만

자연농을 시작하기 전 그는 JA(전국농업협동조합, 우리나라의 농협과 비슷한 국영조직)에서 일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정치인이었고, 어머니는 농사를 지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농사와 농업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도쿄대 농학부에 진학하여 공부를 마친 후 JA에 일자리를 얻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공기업이었고, 그 스스로도 의미 깊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했다.

“대학 시절부터 쭉 ‘일본의 미래는 농업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왔고, JA 근무 시절엔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해요” 그의 가까운 동료인 기타 오사무씨가 들려준 이야기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열성적인 학구파였던 그는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매주 꼬박꼬박 도쿄에서 가장 큰 서점인 ‘키노쿠니야’를 찾아 농업에 관련된 책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었다. 그러다 눈에 띈 책 한 권이 그의 남은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Okitsu, planting root vegetables in his field (photo: Patrick Lydon)

처음엔 그 책을 간단히 훑어보고는 그냥 지나쳤다. 다른 책에 비해 값이 더 비싸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번 방문에서 또 다시 그 책이 눈에 띄었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고 책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만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워 다 읽고 말았다. 그동안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의 농사였다. JA에서 일하는 동안 차차 갖게 된 현대농업에 관한 의문들과 그에 대한 해답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신비한 밭에 서서‘였다.

다음 날 아침, 수소문해서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아카메 자연농 농장‘으로 전화를 걸었고, 바로 방문 일정을 잡았다. ‘아카메 농장’은 자연농에 대해 배우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매달 견습회를 열고 있었고, 일본 각지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그는 매달 농장을 찾아가 자연농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기 시작했다. 자연농이야말로 현대 농업의 한계를 넘어 온전히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쉽고 바른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Okitsu talking to locals during a monthly gathering he hosts at his farm (photo: Patrick M. Lydon | CC BY-SA)

하지만 어떻게 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현실에서 그는 난관에 부딪쳤다. 그가 속한 JA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해내야 했고, 그 수익은 농부들에게 비료, 농약, 농기구, 종자를 판매하면서 거뒀다. 경제 성장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현대농업이 권장됐다. 비료와 농약, 기계를 쓰지 않고, 종자는 매해 직접 거두어 쓰므로 구입할 필요가 없는 자연농은 JA와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 있었다.

그는 조직 안에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온전히 지속가능하고,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이로운 자연농의 아이디어는 JA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급진적이고 위험한 생각이었다. 결국 그는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고, 아내는 아이들 교육은 어쩔 셈이냐며 호소했다. JA는 이른바 ‘꿈의 직장’이었다. 공기업이기에 정년까지 안정적이며, 사회적으로도 두루 인정을 받고, 넉넉한 연봉까지 보장돼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막 접어드려는 자연농은 과연 생계 유지가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의심에 휩싸이지 않을만큼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꾸준히 아내를 설득했고, 마침내 온 가족이 도쿠시마로 이주해서 자연농을 시작했다. 1992년, 23년 전의 일이다.

호미와 낫, 두 손과 발, 충분합니다.

재작년 봄,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도쿠시마에 있는 ‘카즈아키 농원’을 찾았다. 몇 시간 짤막한 취재가 아니라, 충분한 시간 동안 머물면서 직접 농사일을 거들며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함께 보낸 일주일 동안 매일 밤마다 그와 마주 앉아서 맥주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신기하게도 나의 일본어는 걸음마 수준이었고, 그의 영어는 내 일본어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는데도 대화는 잘 통했다.

“호미와 낫, 두 손과 발, 그거면 돼요.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어요. 충분합니다.” 마지막날 밤이었다. 기분 좋게 취한 그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20년 넘게 자연농으로 농사를 지어왔어요. 내가 기른 채소들을 많은 고객들에게 보냈죠. 정말이지 호미와 낫이면 충분해요.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그동안 쭉 한켠에 품어왔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저..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떤가요?” 그는 껄껄 웃으며 답했다. “내가 돈을 벌려고 농사를 짓겠습니까?” 잠시 숨을 돌리고 그는 이어 말했다.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한 농산물을 키우고, 그걸 먹는 사람들까지 건강해지도록 돕는 일이죠. 그게 가장 핵심입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점이에요.”

자연농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는 자연농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을 나누는 데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다. 매월 도쿠시마 지역의 자연농 모임을 열고, 그가 처음 자연농을 익힌 아카메 농장에서 주도하는 전국 단위 자연농 행사들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아울러 작물 판매는 제철꾸러미(CSA) 형태로 공급하며, 최근에는 자연농 농사 방법을 상세히 담은 DVD를 제작하여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근처 이웃들과의 소통을 위해 지역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이는 그의 논밭 옆에 유난히 꽃들이 많은 까닭과도 연관이 있다. “기존 농업에 익숙한 사람들은 풀들로 뒤덮힌 자연농 밭을 보고 ‘지저분하다’며 눈살을 찌푸리기 쉽죠. 하지만 누구든 예쁜 꽃을 보면, 나쁜 마음이 들지 않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논밭 주변에 꽃들을 심어놨어요. 꽃이 다 지면 베어서 밭에 놓아둡니다. 자연스러운 양분이 되니 일석이조에요.”

Small bug life and flowers flourish at Okitsu's farm (photo: Patrick Lydon)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점점 더 분명하게 와닿는 게 있었다. 그의 삶 속에 오롯이 녹아 있는, 아주 단순하고도 독특한 그 무엇을 조금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동일한 목표, 더욱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고 믿었다. 나아가, 자연은 그런 사람들을 기꺼이 돕고, 사람들 역시 그런 자연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도우며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벌써 23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자연농은 그가 행복을 얻는 수단이자, 다른 이들과 함께 그 행복을 나누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를 포함한 도시인들 역시, 그의 사고방식을 적용시켜 본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자연농이라는 그의 방식과 완전히 똑같진 않더라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을 얻고 나누기 위한 수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행복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생명들에게 더 이롭고 도움이 되는 선택을 일상 속에서 꾸준히 이어간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디에 가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지.. 이처럼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일상적인 선택에서부터 각자 옳다고 믿는 가치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Okitsu's farm and neighboring homes and farms (photo: Patrick Lydon)

1주일 동안의 농장 생활과 틈틈이 이어진 인터뷰를 마무리하던 마지막날 밤, 다른 어느 날보다도 더 자주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불현듯 그의 농사에 딱 알맞는 이름이 떠올랐다. “‘돈 없는 농사’라고 부르면 어때요?” 내 말을 들은 그가 다시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답했다. “맞아요. 돈 없는 농사. 돈이 없이도 얼마든지 충분하지요. 아주 쉬워요.”

 다큐 ‘자연농’  http://www.finalstr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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